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이애나 스펜서 (문단 편집) === 비극적인 죽음 === || {{{#!wiki style="margin: -6px -10px" [youtube(9AVNAd1z0eg,width=480, height=280)]}}}|| [[영국]] 시간으로 오전 7시(한국 시간 오후 3시)쯤에 방송된 [[BBC]]의 추모방송.[* 2002년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사망 때도 방송했다.] 느린 [[God Save the Queen|영국 국가]]와 함께 [[유니언 잭]]이 반기 형태로 걸린 영상과 함께 'Diana, Princess of Wales(다이애나 왕세자비) 1961-1997'이라는 자막을 송출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원래라면 왕가[* 이혼하기 전에는 [[http://www.baronage.co.uk/diana/powstana.gif|이 깃발]]을 썼으나 이혼 후에는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b/b4/Royal_Standard_of_members_of_the_British_Royal_Family.svg/1150px-Royal_Standard_of_members_of_the_British_Royal_Family.svg.png|이 깃발]]을 쓴다. 관에도 덮어진 깃발이 바로 이것.] 문장이 새겨진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b/b4/Royal_Standard_of_members_of_the_British_Royal_Family.svg/1150px-Royal_Standard_of_members_of_the_British_Royal_Family.svg.png|깃발]]을 내보내야 하는데 유니언 잭을 내보냈다고 댓글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방송은 녹화해 [[CNN]]에서 다시 내보냈다. >(여자 아나운서) 모든 정규방송을 중단하겠습니다. 지금부터 뉴스 스튜디오에서 마틴 루이스가 전해드리겠습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B%A7%88%ED%8B%B4_%EB%A3%A8%EC%9D%B4%EC%8A%A4_(%EC%96%B8%EB%A1%A0%EC%9D%B8)|마틴 루이스 앵커]]) 여기는 런던에서 전해드리는 BBC 텔레비전입니다. 프랑스 정부는 오늘 새벽 5시에 다이애나 공비가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버킹엄 궁전 측에서는 곧 소식을 확인했습니다. >'''"[[모든 걸 갖추었지만 불행한 사람|아름다움과 명성과 부를 한몸에 지닌 화려한 일생이었지만 단 하나, 행복만은 그녀를 비켜갔습니다]]. 영국 왕실의 다이애나 비가 오늘 교통사고로 숨졌습니다. 올해 나이 36살. 그의 곁에는 세계적인 헤롯백화점 사주 알파예드가 타고 있었습니다."''' >----- >[[박대석]] 앵커의 1997년 8월 31일 일요일 [[KBS 뉴스 9]]의 오프닝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3777210|멘트]] >'''"8월의 마지막 일요일, 오늘 지구촌의 톱 뉴스는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비의 사망 소식이었습니다.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지 1년 만에 다이애나 비는 오늘 새벽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숨졌습니다. 그녀와 함께 차에 타고 있었던 [[이집트]]의 억만장자 애인도 함께 목숨을 잃었습니다. 20살에 왕세자비가 된 후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숱한 얘깃거리를 안고 살아온 다이애나 비는, 마치 [[프랑스 영화]]의 슬픈 피날레처럼 36세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 >[[권재홍]] 앵커의 1997년 8월 31일 일요일 [[MBC 뉴스데스크]]의 오프닝 [[https://imnews.imbc.com/replay/1997/nwdesk/article/1768456_30717.html|멘트]] 다이애나가 이혼한 후 만난 남자들은 하나같이 [[파파라치]]의 카메라를 피할 수 없었다. 다이애나는 파파라치를 피하기 위해 변장까지 했지만 완벽히 따돌릴 수 없었다. 다이애나는 [[런던]] 시내 한복판에서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서 파파라치 1명을 잡아 두들겨 팼고, 파파라치의 사진기를 압수하여, '마틴'이라는 유명한 영국 파파라치에게 [[접근금지명령]]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했다. 그러자 마틴은 [[적반하장]]으로 [[망언|"그까짓 사진 좀 찍히는 게 무슨 대수라고요! 다이애나보다 내가 더 고통스러운 처지에요!"]]라고 망언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다이애나의 사진값은 그야말로 천정부지였고, 그녀가 도티 알파예드[* 알파예드는 [[이집트]] 출신으로, 런던 해로스 백화점과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의 [[풀럼 FC]]를 운영하는 백만장자 모하메드 알파예드의 아들이다. 그와 다이애나가 연인 사이인지는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최근 집사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아닌 [[파키스탄]] 출신의 하스낫 칸이 연인이었다고 한다.]와 [[요트]]에서 밀회를 즐기는 사진은 1997년 당시 돈으로 '''30억 원'''에 팔렸다.[* '''1997년''' 기준이다.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큰 돈이다.]이러니 [[파파라치]]들 눈이 안 뒤집어질 수가 있을까. 아예 사진과 영상을 조작해서 판매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다이애나가 애인의 등 위에 타고 말처럼 몰고 다니는 영상이 유출된 사건이 있었는데, 돈을 노린 조작이었던 것으로 판명되기까지 했다.[[https://news.kbs.co.kr/news/view.do?ncd=3766744|관련 보도]] 또한 오토바이, 차, 요트, 헬리콥터까지 총동원된 도촬 작전이 벌어졌다. 그리고 운명의 1997년 8월 31일, 프랑스 [[파리(프랑스)|파리]]. 00시 20분, 리츠파리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텔이 제공한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s-3.6|메르세데스벤츠 W140 S클래스]]에 탑승한 다이애나와 알파예드를 파파라치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쫓아갔다. 00시 23분, 벤츠는 파파라치들의 카메라를 피하기 위해 속력을 높였다가, 그만 중심을 잃고 퐁드랄마의 지하차도 기둥에 충돌하고 만다.[* 사고 당시에는 시속 180km가 넘는 과속을 했다고 잘못 알려졌으나, 이는 사고 충돌로 계기판이 고장난 것이었고 경찰 조사 결과 터널의 제한 속도인 50km/h의 약 2배에 달하는 110km/h 정도로 달렸던 것으로 예상된다고 발표되었다.] 운전사 앙리 폴[* 부검 결과, [[음주운전|면허취소 수준의 만취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과 도디 알파예드는 충돌 순간에 [[즉사]]했으나, 다이애나와 경호원 리스 존스는 아직 살아 있었다.[* 목격자 증언에 따르면 다이애나가 의식을 잃기 직전에 "Oh my God."이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하지만,''' 파파라치들은 그녀를 신속히 구출하거나 신고하기는커녕 '''[[인간말종|그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들이대며 플래시를 마구 터뜨려댔다.]]''' 심지어 보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다이애나가 앉아있는 조수석 뒷편 좌석의 문을 열고 중태에 처한 다이애나의 손 위치를 함부로 조정하는 짓까지 했다고 한다. 00시 30분, 충돌 약 10분 뒤에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으며, 경찰 도착 5분 후 구급차가 뒤이어 도착했다. 하지만 구조대가 도착한 뒤에도 파파라치들은 [[업무방해죄|현장을 촬영하기 바빠 구조를 더디게 했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프랑스 경찰]]의 증언에 따르면 계속 몰려들어 사진을 찍어대는 파파라치들을 저지하기 위해 증원 요청을 해야 할 정도였다고. 1시 00분, 심하게 파손된 차량 상태로 인해 다이애나는 사고 발생 30분이 지나서야 차에서 꺼내졌지만 사고의 충격으로 심장과 폐에 급격히 피가 차오르는 쇼크 증세를 겪고 있었고 이 때문에 심정지가 온 상태였다.[* 사고 현장을 우연히 지나다 다이애나에게 최초로 응급 처치를 했던 프랑스 의사 프레데릭 마일레츠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다이애나에게 눈에 띄는 외상은 없어서 다이애나가 괜찮을 줄 알았다고 했다. 참고로 인터넷에 떠도는 다이애나 사고 장면으로 알려진 사진은 가짜이다. 다이애나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뉴스 오브 더 월드 등 현장에 있던 파파라치들로부터 사진을 받은 매체들은 사고 현장을 담은 사진들을 삭제해 내보내지 않았다. 다만 2004년 미국 방송국 CBS에서 다이애나 사망 사고와 관련된 다큐를 방영할 때 당시 찍힌 사진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심폐소생술]]로 간신히 맥박이 약하게나마 다시 뛰긴 했지만, 후술할 프랑스 응급의료 서비스인 SAMU는 어째서인지 20분 후에나 도착했고, 현장 이탈 또한 20분이나 지나고 이뤄졌다. 뿐만 아니라 바로 근처의 병원이 아닌 좀 떨어진 곳에 있는 병원으로 천천히 이송됐다[* 이 때문에 다이애나의 사망이 교통사고로 인한 게 아니라 암살 때문이라는 음모론이 제기됐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심박이 거의 멎은 다이애나를 보다 전문적인 설비가 있는 큰 병원으로 안정적으로 이송하기 위해 그런 것"이라고 해명했다.]. 결국 사고 발생 약 2시간 만에야 다이애나는 병원으로 이송될 수 있었지만, 현지 의료진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이애나는 04시에 [[사망선고]]를 받게 된다. 외상은 왼쪽 뺨에 난 상처 정도만 있을 정도로 심하지 않았지만, 머리와 가슴에 심한 내상을 입고 있었다. 특히 사고 당시의 충격으로 인해 [[내장파열]]이 심했다고 한다. 정상인이라면 중앙에서 왼쪽을 향해 있어야 하는 [[심장]]이 '''오른쪽으로 이동'''해 있을 정도였고, 폐정맥과 심벽도 크게 손상되었다고 한다. 또한 부검 결과, 사망선고가 04시에 내려졌을 뿐이지 다이애나는 사고 발생 약 20분 만에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파파라치 등 때문에 다이애나가 병원으로 늦게 이송된 점은 안타깝지만, 부검 결과에 따르면 사고로 입은 부상이 심각했으므로 이송이 제대로 신속히 이뤄졌다 해도 의료진이 다이애나를 소생시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20세에 왕세자비가 되어 15년 간의 불행한 결혼을 끝내고 막 자유로워진 다이애나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언니들은 물론이고 모친보다 먼저 죽었다.[* 어머니 프랜시스는 36세에 사망한 딸과는 달리 2004년에 68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이 점은 시외할아버지인 [[조지 6세]][* 다이애나가 태어나기 9년 전에 5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가 1952년 2월 6일에 폐암으로 형이자 자신의 큰시외할아버지인 [[에드워드 8세]]와 모친이자 자신의 시외증조할머니인 [[테크의 메리|메리 대왕대비]]보다 먼저 죽는 것, 즉 윗형제와 모친보다 먼저 죽는 것과 유사하다. 또 시이모인 [[마거릿 로즈|마거릿 공주]]도 2002년 2월 9일에 언니이자 자신의 시어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와 모친이자 자신의 시외할머니인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엘리자베스 왕대비]]보다 먼저 죽었다. 36년 61일의 [[요절|짧은 삶]]이었다. 파파라치들은 [[과실치사]], 사생활 침해, 구조거부죄([[선한 사마리아인 법]])로 체포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557966/Paparazzi-partly-responsible-Dianas-death-face-justice.html|체포 당시 머그샷과 이름]]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무죄를 받았고, 주범 격의 3명에게 상징적인 의미로 1유로의 벌금이 선고되었다. 하지만 세간의 비난에서 벗어날 순 없었고 이들 파파라치 중 1명은 자살까지 했다. [[기레기|정신 못 차린 잡지사들]]은 죽어가는 다이애나의 사진을 사겠다고 파파라치들에게 비밀리에 수억 원의 돈을 제시했다가 [[CNN]]에 의해 폭로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다이애나의 남동생 찰스 스펜서 백작이 "파파라치들에게 인정사정없이 다이애나 사진만 찍게 한 신문사들이여, '''기어이 당신들의 두 손에 우리 누님의 피를 묻히게 되었구나!'''"라며 매우 격앙된 비난을 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nmqoJ1kDgrM|이 영상]](1분 11초)을 보면 다이애나 비 사후에 추모 인파를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 기자를 향해 "너희가 다이애나를 죽였어, 너희는 쓰레기들이야!"라며 분통을 터뜨리는 한 남성이 나오는데,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동감의 뜻을 나타내며, 같은 자리에 있던 여성은 "그 망할 카메라 좀 꺼!"라며 촬영기자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사후 그의 아버지 모하메드 알파예드는 그의 아들과 다이애나의 죽음에 영국 왕실, 특히 다이애나의 시아버지인 [[필립 마운트배튼]] 공이 배후에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이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사실 영국 왕실가 사람들 중 다이애나가 힘들때 위로해준 유일한 사람이 필립 마운트배튼 공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는 크게 설득력이 없다. 참고로 알파예드는 매우 성공적인 사업가지만, 영국과 유럽에서의 현지 평판이 원래 매우 나쁜 인물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조폭]]이 유력 기업을 소유한 꼴이었다. 그래서 다이애나가 그 아들인 도디 알파예드와 연인 의혹이 있다는 것에 더욱 왕실의 분노를 샀다. 윌리엄 왕자와 해리 왕자도 어머니가 다른 남자, 심지어 무슬림과 재혼할지도 모른다는 점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게다가 도디 알파예드는 유명한 바람둥이에 마약 중독자였다. 영화 제작자 신분으로 헐리우드의 스타급 여배우들과 두루 알고 지냈는데 영화 촬영장에서 스탭들에게도 자신이 하던 코카인을 나눠주는 일을 저질러 제작사 대표에게 쫓겨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의붓 숙부에 따르면 어디를 가든 에이전시에서 보내준 모델들에 둘러싸여 지냈다고 한다. 심지어 그는 전 세계에 있는 그의 [[별장]]들을 순회할 때마다 각 지역의 모델들을 불러서 파티를 즐겼다고 한다. 첫번째 결혼을 8개월만에 끝내는 바람에 구설수에 오르자 재혼할 생각이 없다고 했으나 미국 출신 모델인 켈리 피셔와 약혼했고 아이를 가질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피셔와의 결혼을 얼마 안 앞둔 시점에 아버지이자 헤롯 백화점 소유주인 모하메드 알 파예드의 휴가 초대를 받아들인 다이애나와 만나고 교제하게 되면서 피셔에게 일방적으로 파혼을 통보했다. 이에 피셔가 기자회견을 열어 파혼당했다고 울며 도디에게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통보한 바람에 영국의 전 매체가 다이애나가 어떻게 저런 파렴치한과 사귈 수 있느냐며 대대적으로 비난하는 보도를 내기도 했다[* 피셔가 소송을 제기한 게 무색하게도 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도디는 다이애나와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피셔는 결국 소송을 취하했다.]. 아직도 다이애나의 죽음에는 많은 의문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세계에서 알아줄 정도로 높은 수준인 프랑스의 응급 의료 서비스 SAMU가 다이애나에겐 즉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른 국가의 응급 의료 시스템이 훈련된 구급대원을 사고 현장에 파견해 이송 중인 환자 상태의 악화를 방지 또는 지연시킬 목표로 피동적 대응을 한다면, SAMU는 현장에 구급대원만이 아닌 의사를 동행시켜 악화 방지, 지연 뿐만 아니라 환자 상태 파악, 진단과 그에 따른 조치 등 좀 더 적극적인 의료 대응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런 프랑스 의료 체계는 [[마이클 무어]]가 만든 [[식코]]에서도 잘 나온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이애나 사고 당시엔 1시간이나 걸렸다는 것이다. 다이애나의 교통사고가 영국 왕실 & 정보부의 공작이었다고 주장하는 측에서 제시하는 다른 의혹들은 [[https://en.wikipedia.org/wiki/Death_of_Diana,_Princess_of_Wales_conspiracy_theories|영어 위키백과 문서]]를 참고하자. 그리고 다이애나비가 사망한 1997년 만들어진 '다이애나비 추모 기금'이 있으며 2013년 윌리엄 왕자 부부와 해리 왕자 부부가 함께 활동한 '왕립재단'에 불입되었으며 수년간 모금 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유산이나 기부금을 통해 자금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